BC 켈로나에서 5년 살며 느낀 것 — 스시 식당, 영주권 그리고 가족

📍 Kelowna, BC  |  🕐 읽는 시간 약 6분

내 최종 목적지는 원래 여기가 아니었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내 최종 목적지는 사실 지금과 달랐다. 캐나다 랜딩도 원래 토론토에서 처음 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BC주 켈로나(Kelowna)로 옮겨가 Momo 스시라는 곳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급은 18달러였고,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5년을 일했다. 살던 곳은 월세 2,200달러짜리 아파트였다. 그 시간 동안 결혼하고, 아이 둘이 태어났고, 영주권까지 받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오래 살았던 도시가 아니라 내 인생 방향 자체가 바뀐 곳이었다.

켈로나는 내가 생각했던 캐나다와 조금 달랐다

처음 켈로나에 갔을 때 놀랐던 건 분위기였다. 캐나다라고 하면 큰 도시와 긴 겨울을 먼저 떠올렸는데 켈로나는 조금 달랐다. 큰 호수가 있고, 여름에는 햇볕이 강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가 있었다. 겨울에는 눈 덮인 풍경이 조용했고, 여름이 되면 전혀 다른 도시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계절이 바뀌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kelowna winter

할로윈에 태어난 첫째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스시 식당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었다. 첫째가 10월 30일에 태어났는데, 켈로나 병원에서 출산하던 그날이 마침 할로윈 시즌이었다. 분만실에 있던 간호사들이 할로윈 분장을 재미있게 하고 있어서, 오히려 긴장이 많이 풀렸던 기억이 난다. 첫째 출산 때는 친정 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둘째도 켈로나에서 태어났다. 이번엔 부모님이 오시지 못했다. 그래서 첫째를 주변 분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친한 동생에게 아침 일찍 와달라고 부탁했고, 나머지 시간은 전도사님 댁에 첫째를 이틀 정도 맡겼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게 그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느꼈다.

그렇게 아이 둘이 태어났고, 비자를 준비했고, 영주권을 기다렸다. 그 평범한 반복이 결국 내 삶을 만들고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꽤 소중했다.

재정적으로는 답답한 시간이었다

켈로나에서 유일하게 힘들었던 건 재정적인 문제였다. 5년 동안 시급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영주권 절차 때문에 한 식당에서 오래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사실 나는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다. 그 답답함이 5년 내내 마음 한켠에 있었다.

kelowna

영주권을 받던 날

결국 5년째에 영주권을 받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 얼떨떨하면서도, ‘나도 드디어 하는구나’ 싶은 벅참이 함께 밀려왔다. 대도시보다 기회가 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시간 동안 생활 속 여유는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주말 풍경도, 사람들과의 거리도 달랐다.

영주권을 받고 나서는 처음 랜딩했던 토론토로 다시 가고 싶었다. 대도시라 기회도 더 많을 것 같았다. 당시의 나는 결과를 만들려고 살았다기보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나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시간이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내가 얻은 생각

BC주 켈로나는 내 인생에서 잊기 어려운 곳이다. 좋은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도 했고, 기다림도 있었고, 재정적으로 답답한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은 토론토에서 청소업을 하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캐나다의 시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아직도 켈로나다. 어쩌면 사람에게는 태어난 고향 말고도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그곳이 켈로나였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방문해서 그때의 풍경과 기억들을 천천히 다시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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