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캐나다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 미국 비자 거절 4번, 그리고 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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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ronto, Canada  |  🕐 읽는 시간 약 5분

별 이유 없이 미국을 목표로 했다

처음부터 캐나다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당시 나는 26~27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냥 미국이 세계 강대국이고, 미국 학교 졸업장 하나 있으면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내 인생도 한 단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목표도 단순했다. 영어를 배우고, 미국 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까지 따서 돌아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입학허가서가 있으면 당연히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었다. 학교 입학허가서를 받아 놓고 그냥 다 되는 줄 알았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비자 인터뷰를 보러 갔다.

아직도 기억난다. 심사관이 물었다.

“What is your purpose?”

지금 생각하면 그냥 “To study.” 한 마디면 됐을 질문이었다. 근데 당시에는 질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횡설수설했고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결국 비자가 거절됐다. 심사장 한쪽에서 한동안 멍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문가에게 120만원을 맡겼다 — 결과는 예상 질문지 몇 장

1번 떨어지고 나니 아차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비자 거절 전문가를 찾아갔다. 10년 전 기준으로 비용은 약 120만원. 부모님이 내주셨다. 그 사람이 건네준 건 예상 질문과 모범 답안 몇 장이었다. 별다른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다.

💡 지금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분께
비자 거절 전문가에게 큰 비용을 쓰기 전에, 미국 대사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비자 인터뷰 준비 가이드를 먼저 읽어보세요. 예상 질문은 인터넷에도 충분히 나와 있습니다. 핵심은 영어 답변 연습과 서류 준비입니다.

그 이후로 세 번을 더 신청했다. 매번 떨어졌다. 마지막에는 심사관이 이런 말을 했다. 결혼 후에 다시 오라고. 그 말이 결정타였다. 뭔가 큰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느낌이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캐나다라는 나라도 있어요” —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미국이 안 되니 그제서야 유학원을 찾아갔다. 거기서 처음 들은 말이 있었다. “캐나다라는 나라도 있어요.” 솔직히 캐나다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미국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나라였다. 영어를 쓴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학교와 과정도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선택한 학교는 토론토의 Sheridan College였다. Bachelor 과정이었고 Athletic Trainer 관련 전공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미국에서 이루려던 목표를 캐나다에서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토론토로 오기로 결정했다.

처음 도착한 캐나다 — 초가을의 공기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가 초가을이었다. 신선하고 약간 선선한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상하게 그 계절 공기만 느껴도 그때 장면들이 떠오른다.

홈스테이를 선택했는데, 작고 까무잡잡한 여성 분의 집이었다. 전직 학교 선생님이라고 해서 믿음이 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방 하나를 렌트해주는 거였다. 음식은 자기가 먹을 걸 하는 김에 학생들 것도 같이 해주는 정도였다.

한국 문화에서 자란 나는 남의 집 냉장고 문을 여는 게 쉽지 않았다. 아줌마가 음식 준비를 늦게 하면 그냥 배를 곯았다. 두 달쯤 지나고 결국 나오게 됐다.

노란 조명 아래 혼자 책을 읽던 할머니

그때 나는 멋진 졸업장과 자격증을 들고 한국에 돌아가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 수준도 몇 단계 올라가고,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다가 한 장면을 봤다. 노란 조명 아래에서 한 할머니가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되게 평온해 보였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국에서는 내 선택보다 남의 시선을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머리 스타일, 옷차림, 살아가는 방식까지.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돌아보면 그 순간이 내가 캐나다에 계속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된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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